[이론]지 9호 게재
(1994년 여름, pp. 109-121.)

⃞ 대담 ⃞

공산주의로의 세계사적 이행을 생각한다*

빅토르 바추린 (모스크바대 교수, 철학)

번역: 남구현 (한신대 강사, 사회복지학)


Z 바추린 교수님, 교수님은 이제 60세를 맞아 일생 동안 연구자로서 많은 과학적 발견을 했고 풍부한 인간 관계를 맺어 왔으며, 대학교수로서는 순탄치 않았던 지난 날을 회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새로운 학생세대와 박사후보자(Aspirant)세대를 자신의 발전론적 사유방식(entwicklungstheoretischen Denkmethode)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교수님은 귀국에서의 철학발전사적 관점에서 소비에트 말기에 놓여 있는 현재의 정신적 분위기, 즉 철학적 풍토를 어떻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바추린 저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고려하여 답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1991년 8월 이미 1년전부터 준비되어 왔던 사회질서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변화는 처음에는 정치권력의 변화라는 형태 속에서, 1991년말부터는 개정된 입법, 새로운 신용 및 재정 체계의 도입을 통해, 그리고 오늘에는 엄청난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사유화 과정으로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아마도 1993/94년까지도 자본주의의 다양한 소유형태를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 나라는 본질적으로 과잉생존한 생산양식[자본주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것도 예전에 통일적인 경제체계가 혼돈상태로 붕괴됨에 따라 선진자본주의 세계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자명하게도 이 과정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진행되었는데, 이는 지난 몇 해 동안 예시되었으며, 역사적 후퇴라는 모순성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이 변화에는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적 사유의 다양한 조류와 단계가―그것을 단순히 수용하는 식이든 혹은 모방을 시도하는 식이든 간에―환생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과정이 조잡하고 원초적이며 오히려 자본의 본원적 축적에 적합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적 삶도 역시 조잡하고 원초적인 부르주아적 의식형태의 르네상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편 역사의 후퇴는 언제나 이전의 이상의 파괴, 모든 미래표상의 상실, 절망감을 수반하였습니다. 따라서 전(前)부르주아 철학과 종교, 중세적이고 심지어 이교도적이기도 한 관념으로 선회한다든지, 다양한 동양(인도, 중국, 일본)적 신앙 및 사유 흐름으로 회귀한다든지, 고유한 민족전통을 다시 복구한다든지 하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든 형태는 비합리주의와 각자의 전통에 따른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지도적인 철학잡지 자체가 일련의 종교 문제에 관한 저서라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우리의 철학풍토는 바로 이 선상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불같이 일고 있는 이러한 모든 흐름에 대한 관심, 특히 금세기로의 전환기의 러시아 철학에 대한 관심은 결코 이러한 흐름 자체의 성과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전반적인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들중에서 어느 쪽이 영향력을 획득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나라 집권자들이 경제질서를 자본주의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또는 그것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어쨌든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신념 및 사유 전통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할 것입니다. 이는 이미 실제로 관찰되고 있으며, 이 나라가 저개발국, 가난한 종속국 상태로 전락하는 한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Z 교수님은 러시아고전철학이 세계철학의 발전 속에서 갖는 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바추린 저는 이 철학이 이룩한 특별한 성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혹자는 솔로비예프(Solovjev)를 러시아철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보지만, 제가 볼 때 그는 헤겔에 비한다면 애숭이입니다. 예를 들어 총체성이라는 관념은 이미 헤겔이 가장 뛰어난 형태로 발전시켜 놓았습니다. 솔로비예프에 의한 이 개념의 종교적 채색은 제가 생각할 때 철학 발전에 새롭게 기여한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그가 한 작업은 사회정책적인 관점에서 보면 당시 중세적이었던 러시아정교를 개혁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솔로비예프는 정교의 개혁을 위한 정신적 토대를 다른 서양적 양식 및 정신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도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본인 역시 스스로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오늘까지 본질적으로 중세적입니다.

Z 현재 귀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상황입니까?

바추린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대변되고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저작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습니다. 출판되고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이런 저런 흐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적응 시도, 즉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교리들의 절충주의적인 혼합이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사이비마르크스주의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도덕적인 테러가 가해지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발전을 위한 어떠한 자유도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테러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쩌면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를 다른 특정 방향의 옹호자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와 같은 상황에 있는 국가에서는, 정교 또는 종교와의 우호적 관계를 위로부터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굽히지 않는 모든 세력을 배제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엄청난 압력이 가해집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파시즘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무자비하고 끔직한 전체주의 등장의 원천을 마르크스주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나라가 처한 과거, 현재, 미래의 곤궁에 대한 책임을 통채로 마르크스주의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원적 축적'의 시기에 물질적인 여유가 없으며, 투기와 마피아 구조가 번성하는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하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을 위한 기회는 고사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정상적인 존재조건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직접, 간접적으로 반대하고 있거나, 적어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물질적, 정신적으로 출판 기회가 집중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 이 나라의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어떤 국가, 적어도 자본주의세계의 어떤 국가보다도 처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겠습니다.

Z 교수님이 속한 학부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바추린 이미 언급한 모든 입장들이 여기서도 대변되고 있습니다. 비록 관점에서의 다원주의가 공식적으로는 표명되고 있지만, 예를 들어 제가 이전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사를 연구하고 가르쳤던 강좌는 폐지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윤리 강좌를 맡고 있습니다. 학부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저를 해직시키려는 직접적인 시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부 역시, 국민의식을 지배하고 있고 당연히 학생층에도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는 전반적인 변화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게 모든 발생가능한 범죄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는 곳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사를 학생에게 전달하는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이 경우 학부가 그것을 허용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것이 결코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강좌의 폐지는 이 나라의 전반적인 정신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추진된 듯합니다. 이것은 결코 책임의 문제가 아니며, 문제가 개개인 또는 개개의 학부장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의 상황은 국가 전체의 상황을 반영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 학부를 포함해서 상황이 비참하다고 평가되든 말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의 사람들도 상당히 낮은 봉급을 받고 있습니다. 상업적 구조가 지배적인 현재의 학술, 출판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상업적 구조는 이 구조에 친밀한 특정의 정신적 방향 또는 출판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완전히 세류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철학자들은 빠르게, 다른 사람들은 느리게, 어떤 사람들은 솔직하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적응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전체 사회의 상황, 즉 경제, 정치, 정신, 문화적 관계의 변화에 종속되어 장기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 경우 누군가가 정신적 자유에 대한 생각을 품고자 한다면, 그는 깊은 환상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이전에 그것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한번도 '상층부'에 속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교조적으로 전도되는 것에 대항하여 글을 써 왔습니다. 제가 이전에는 적어도 몇 편의 글을, 때로는 5-10년 지체되기는 했어도, 출판할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실제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이 이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Z 바추린 교수님, 당신이 학문의 길을 들어선 초창기였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지배적이었던 50-60년대의 분위기에서는 마르크스의 방법론, 특히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연구는 확실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마르크스의 주저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마르크스의 연구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추린 50년대의 분위기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당신들의 추측과는 반대로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이긴 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실제로 탐구하려는 관심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20-30년대와 다른 점은 진정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 관심이 마르크스의 사유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단지 마르크스가 저술한 부분, 무엇보다도 {그룬트리세}(Grundriß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57/58)에 쓰여진 부분을 그대로 답습할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특히 로젠탈(M. M. Rozental)에 의해 계속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20-30년대의 문헌은 물론 러시아어로 당시에는 번역되지 않았던 {그룬트리세} 자체를 접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고(故)일리엔코프(E. Iljenkov)의 저작과 함께―그는 박사후보자였고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비로소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그러한 기초연구를 위한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기 이전의 시기로 예전에는 오직 한 사람, 즉 스탈린에게만 유보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정치경제학에서의 변증법과 관련한 일리엔코프의 문제제기는 철학 교리의 보편적인 배경과는 첨예하게 구별되는데, 이에 대해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당시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철학 교리는 본질적으로 선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아스무스(Asmus), 오이저만(Oizerman), 트라흐텐베르크(Trachtenberg) 등과 같은 철학사가들에게 있어서 노골적인 경험주의가 지배적이었으나, 저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비쳤고, 또한 저와 상충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일리엔코프는―비록 그와 저는 이론의 본질적인 차이로 인해 구분되지만, 저는 오늘까지도 그를 이 나라의 소비에트 기간중 가장 훌륭했던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고 있습니다―철학 교리에 생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곧 이어, 즉 1956년 개인숭배에 대한 판결이 공포된 후, 선전의 성격을 띠지 않은 철학 문제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좀더 유리하게 조성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숭배에 대한 비판이 흐루시초프의 이기적 관심 및 조야한 관념의 영향하에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에, 이 비판이 지닌 동전의 양면성으로, 특히 당시 학생들 사이에는 현실 및―어느 정도는―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한 허무주의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허무주의는 아직 완전한 붕괴의 시기에나 번성할 수 있는 냉소주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밖에도 이 나라의 모든 새로운 통치자들은 역사에 좀더 깊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경제정책을 뿌리채 뒤바꿔 놓곤 하였기 때문에, 50년대말부터는 새로운 강좌를 위한 방법을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에서 빌려오기 시작했고, 여기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교조화된 사유의 조건 아래에서 자라 온 흐루시초프의 아첨꾼들은 그밖의 다른 방도를 찾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탈린의 경제정책을 부정하였으나, 이미 다른 곳에서 존재하였던 것을 답습하고 모방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레온티에프(V. Leontiev) 또한 이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당신의 두번째 질문으로 돌아갑시다. 제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 진영에서 사유 및 사유 과정이 실제로 탐구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사유의 구조 및 발전에 관한 체계적인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리엔코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본} 제1장을 연구한 석사논문을 쓰던 기간 동안 저는 이미 {자본}에는 엄격한 체계적 사유가 있음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것을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았으며, 오늘까지 문제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Z 그러면 그때 사유를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교수님의 개념이 생긴 것입니까⋯?

바추린 그렇습니다. 사유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작업하고, 어떻게 실제적으로 완성되는가를 보이고자 하는 한에서 말입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이러한 가능성을 제공하였습니다. 제 생각으로, {자본}은 이러한 류의 연구를 그 정도의 수준에서 하기에 적합한 유일한 자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수미일관하게 실제로 사유할 수 있는가를 그 책에서 파악하고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본}은 높은 수준의 미학적인 즐거움까지 제공합니다.

Z 교수님 연구의 중심점은 '성년' 마르크스에서 청년 마르크스로, 즉 과학적 방법의 발생으로 전이되었는데, 이것은 무엇과 관계있습니까? 물론 교수님의 입장은 서양마르크스주의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마르크스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을 대립시키는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바추린 청년 마르크스로의 중심점 전이는 무엇보다도 {자본}이 그것으로 이르는 과정을 알아야만 깊이 이해되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는 또 다른 목적을 추구하였습니다. 과정을 연구하면 오류가 행하는 법칙적인 역할을 인식할 수 있고, 오류의 구조, 필연성 그리고 다른 오류에 의한 교체 등을 자세하게 규정할 수 있습니다. 과정으로서의 진리는 항상 오류에 의해 수반되고 어떤 수준에 있는 어떤 오류가 진리를 수반하는가를 파악한다면, 좀더 자각적인 자세로 오류를 대할 수 있으며, 진리 발견에 있어서 어떤 수준에서 어떤 오류를 마주치게 되는가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의 이러한 측면은 거의 이해되고 있지 않은 형편이며 전혀 인식되지 못해 왔습니다. 저의 저작은 한편으로는 반(反)교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反)상대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저는 진리 발견과 관련하여 오류의 단계 및 구조를 규정하고자 시도하였으며,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자체 역시 사유 운동을 특징지우는 특정의 질서 및 연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 즉 진리를 향한 사유 운동의 구조를 범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인간은 법칙적으로 운동하는 범주적 사유구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개개의 인간이 이러한 범주적 구조의 총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로서의 인류는 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현실인식 과정은 법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의 연구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추구하였습니다.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 사이에 어떤 단절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관심에서 기인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만으로도 비변증법적입니다. 이 문제제기는 소외된 사회에서 발생되는 사이비질문으로, 이 사회는 단편적이고 모자이크적인 사유방법을 요청합니다. 저는 언제나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자체가 발전하는 직관의 총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직관을 연구할 때 어떤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Z 인식 과정의 범주적 사유구조에 대한 이해는, 교수님의 70년대 이후의 주된 연구방향, 즉 역사의 논리에 관한 연구를 결정적으로 규정하였던 관점을 열도록 하였습니다. 이 관점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바추린 마르크스가 이룩한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그가 무엇을 하지 못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그가 이룰 수 있었던 것의 역사적 제한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느 학자의 직관을 탐구할 때 발전과정 속에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이 지닌 역사적 한계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의 마르크스주의는 본질적인 면에서 오랫동안 발전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전도되었습니다.

인간의 사유, 그것의 범주적 장치, 역사적 방법론의 특정 단계 등에 대한 발견은 {자본}의 논리의 발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개별 주체가 아니라 인류가 소유한 범주적 다양함말입니다. 헤겔은 이미 자기 방식으로 이것을 이루어냈습니다. 물론 그의 관념론 때문에 제한성을 갖지만 말입니다. 저는 사유, 즉 인간 사유방법의 발전사를 세계사 전체의 틀 속에서 자세히 비추어 보는 것이 이제부터는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 관점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 자신도 자본의 탐구에서 사회 역사의 탐구로 이동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룬트리세}의] '연대기적 초록'이 단지 세부 문제만을 다룬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달리 저는 이러한 진전이 자본 탐구로부터 나온 필연적 귀결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물질적 삶이 사회에 대해 갖는 규정적 역할이 충분히 정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본}을 집필할 때까지도 마르크스에게서 해결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른슈타인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점에 대해 마르크스를 비판하였습니다. 물론 스스로 어떤 해결을 제시하지는 못하였지만 말입니다.

셋째로 이미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전체 인류 발전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이와 같이 세계사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에 이르도록 하는 상응하는 과정 또한 연구해야만 하겠습니다.

Z 역사의 논리, 즉 사회의 통일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인정은 서양의 많은 역사학자 및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19세기의 '큰 이야기' 또는 적어도 '구유럽의 사유전통'으로 간주되었으며, 모던, 더욱이 포스트모던의 주창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것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역사의 논리를 탐구해야 할 필연성의 근거를 어디에서 구하셨습니까? 그리고 이 경우 어떤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까?

바추린 위에서 언급했던 서양의 관점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역사과정의 법칙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 논의가 부르주아 사회에 뿌리 박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 위에서는 스스로를 영원한 것으로 인지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학문 대상의 다양화, 모순성, 복잡성의 증가가 결코 법칙성, 통일성, 필연성의 존재에 대한 반론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현대의 자연과학, 그것의 확률이론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역사과정에서의 법칙은 수많은 대립적인 우연성 속에서 확률적으로 관철되는 경향으로서만 인식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은 언제나 수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과정은 끊임없이 대안적입니다. 그러나 지배적인 경향성을 이 과정 속에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 사회가 더욱 자기파괴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식하는 데에 역사과정의 법칙성을 거부하는 실제적 토대가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법칙성에 대해 도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습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고 스스로를 근절하고 있거나 근절하려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여기에도 대안이 있듯이 법칙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즉 개개인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살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자살하지 못하며 그런 상황이 동물 일반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그것을 할 수 있으며 특정 단계부터 비로소 가능합니다. 자기인식의 능력, 이러한 고차원적 발전단계는 동시에 자발적인 자기부정의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는 자기파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가 존재하며 다양성 외에 통일성이 있습니다. 일치, 단순, 천편일률로서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즉 외적인 동일성이 아닌 연관성, 다양성의 통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역사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과정의 내적 연관성을 추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과정의 통일성, 즉 내적 연관성, 다양성의 연관성 등입니다. 이것이 5개, 10개 혹은 100개가 존재하는가는 완전히 사소한 것입니다. 역사의 법칙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도구를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삽으로 유전층까지 파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여 그곳에 유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알려면 먼저 삽을 현대적인 굴착기로 교체하여 판단을 검증해야 합니다. 역사법칙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사유방식이 요구됩니다. 제가 추측컨대, 서양의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비록 마르크스의 소도구를 자기 것으로 하였지만, 변증법적 사유방식에는 능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Z 인류 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유형으로의 이행이 교수님의 중심적인 연구대상에 속합니다. 교수님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필연성과 관련하여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역사의 논리'의 이론적 귀결이 이 나라와 전체 동유럽의 변혁에 의해 의문시되었다고 보십니까?

바추린 아니요, 그렇게 생가하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일직선적인 발전이란 없습니다. 혁명이 반혁명을 수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그재그, 단절, 역행 등은 이에 속합니다. 저는 현대 동유럽 및 소련에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것을 반혁명의 시기로 간주합니다. 물론 이들은 일련의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본질적으로 내적 원천에 의해 발생한 반면, 다른 나라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상당 정도 소비에트 군대가 주둔한 상태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들 나라에서의 반혁명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저희 나라에서는 커다란 저항에 부딪쳤고, 고통스럽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적인 차원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반혁명은 결코 드문 것이 아닙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반혁명은 거의 모든 유럽국가를 관통하였고, 또한 거의 모든 사회구성체의 성립단계에서 반혁명은 불가피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반혁명은 사회발전의 특정한 계기에 긴급히 해결하여야 할 과제를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질문은 어떤 경향이 과정을 지배하는가입니다. 왜 프랑스 대혁명 이후 반혁명이 있었습니까? 이는 명백히 테르미도르파가 상당 정도 성숙되어 가던 부르주아 관계를 고려하였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반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왜 반혁명적인 사람들이 대중을 자기 편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또한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대중을 속였기 때문이 아니고, 산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욕구가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 나갈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뭏튼 반혁명일 것입니다.⋯ 속물들에게 현재의 붕괴는 공산주의의 종국적인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적대적인 사회로의 이행은 자본주의적 생활의 이러저러한 특성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온 전체 발전유형을 극복하는 세계사적 과정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행, 인류의 통일과 인류의 지구상의 생존을 위한 조건들을 공동으로 확보하기 위한 객관적 전제는 현재 성숙되고 있습니다. 인류가 세계전쟁, 경제적인 붕괴에 의해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공산주의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Z 교수님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십니까?

바추린 지금도 역시 세계사 발전의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적 연구방법, 역사유물론 등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고, 역사적으로 사라지는 사유형태로서 지양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관련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에서는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저의 최근 저서 후기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역사단계를 경제적 사회구성체로 구분한 것이 어떤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이라고 서술하는 관념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통일적인 분류기준, 즉 생산양식에 의한 사회구성체 개념은 물론 충분히 정당한 것입니다만, 제가 생각할 때 일면적입니다. 세계사의 현단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시기구분은 시기구분 근거 자체의 변화 및 발전을 고려하여야만 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생산력, 생산관계 그리고 그들간의 변증법, 상부구조와 사회적 의식형태 등의 구체적 내용뿐만 아니라 생산력 자체, 생산관계, 예를 들어 생산, 소비, 분배 및 유통간의 상호작용 자체 역시 변화 발전합니다. 즉 일반자(das Allgemeine) 자체가 변화합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사실 이것을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발전의 기준 자체가 스스로 발전합니다. 역사발전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역사의 보편적 진행이 우연, 우회, 단절 등을 통해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이것은 바로 역사적으로 발생, 전개, 발전되는 필연성입니다. 더구나 이 필연성은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조건 아래 인간의 활동 속에서, 활동에 의해, 행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저는 역사의 시기구분에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통일로서의 사회의 발전과정의 단계들이 기초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이 생성되는 과정이고 사회적인 것에 의한 자연적인 것의 변형 과정입니다. 자연적인 것(인간의 외부 및 내부의 자연)이 인류 세계사의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에 유기적으로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이것을 저의 저서에서 시도하였습니다. 여기서 발전시킨 연구의 단초는 유물론적 역사인식보다 더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과학적 진리로서 유물론적 역사인식은 새로운 연구에 의해 완전히 극복될 수 없지만, 그것의 적용범위가 제한되었다는 점을 인식할 수는 있습니다. 더 높은 사회 단계의 입지에서 바라볼 때―그리고 그러한 관점의 조건은 오래 전 이미 성숙되어 있습니다―유물론적 역사인식은 그것의 반대 개념인 관념론적 역사인식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관점입니다. 이는 역사의 토대, 즉 사회적 노동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의 분할이 역사적으로 상대적이고 따라서 극복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오늘 인류가 멸망의 형벌에 직면하여 자본지배적인 사회발전 유형의 지양이라는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에 봉착해 있고―물론 마르크스 시대에는 [자본주의의 지양이라는 문제가] 직접 전면에 서 있었고 그의 연구 방향 및 해결 방도를 지배하였습니다―, 이는 전체 인류의 전사(前史)를 극복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점의 전위, 즉 문제제기의 다른 강조점이 제기되어야만 합니다. 바로 제한성의 지양, 즉 마르크스 이론과 방법이 지닌 역사적 제한성―결코 개인적 제한성이 아닙니다―의 지양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여기에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미주>

*Viktor A. Vazjulin, "Nach dem Sieg der Konterrevolution: Den welthistorischen Übergang zum Kommunismus denken (Gespräch in Moskau)", Z, June 1993.

Z 편집자 주: 모스크바 로모노소프(Lomonossow) 대학 철학부 교수인 바추린과의 대담은 1992년 4월과 10월 모스크바에서 하브만(Gudrun Havemann), 코젤(Wladimir Kosel), 다퍼마키스(Manolis Dafermakis)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추린 교수의 저서중 러시아어로는 특히 {칼 마르크스의 '자본'의 논리}(1968), {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연구방법의 형성}(1975), {역사의 논리: 이론과 방법론의 문제}(1988) 등이 있다. 독일어로는 Marxistische Studien: Jahrbuch des IMSF, No. 12, 1987에 실린 논문 "Das Historische und Logische in der Methodologie von Karl Marx"가 있다 [국역: N. A. 짜골로프 감수, {정치경제학 교과서 I-1}, 새길, 1990].